당신은 아침에 제일 먼저 눈을 뜬다. 인디언 보초병처럼 살그머니 옷을 꿰어 입고, 방과 방을 가로지른다. 시계공처럼 조심조심 현관문을 닫는다. 됐다. 이제 밖이다. 당신은 가장자리가 장미빛으로 물든 새벽의 푸르름 속에 서 있다. 모든 것을 정화시키는 차가운 공기도 빼놓지 말고 언급해야 한다. 숨을 쉴 때마다 입에서 연기 같은 구름이 후후, 빠져 나온다. 당신은 새벽 보도 위에, 자유롭게, 가볍게 존재한다. 빵집이 조금 먼 거리에 있어서 오히려 다행이다. 건달처럼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케루악, 당신은 모든 것을 앞지른다. 옮겨 놓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모두 축제이다. 당신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린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보도 가장자리를 따라 걷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마치 중요한 것은 사물들의 여백, 혹은 가장자리라는 듯이. 그것은 순결한 시간, 다른 사람들이 모두 잠들어 있을 때 낮으로부터 훔쳐 낸 특별한 시간이다.
아니, 모든 사람들이 <거의> 잠들어 있다는 말이 맞겠다. 저기, 빵집에 깨어 있는 사람이 있으니까 말이다. 빵집 불빛은 따뜻하다. 그 불빛은 사실은 차가운 네온 사인이다. 그러나 따뜻하다는 생각이 네온 사인에 호박색으로 여운을 둘러 준다. 빵집에 가까이 다가가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꼭 적당한 만큼의 김이 창에 서려 있다. 그리고 빵집 여주인이 아침 첫 손님들 - 그들은 여주인의 새벽의 공모자들이다 - 에게만 각별하게 건네는 즐거운 아침 인사도 준비되어 있다.
"크루아상 다섯 개하고, 너무 많이 구워지지 않은 미끈한 바게트 하나 주십시오!"
작업복을 입은 빵집 주인이 밀가루 칠을 한 채 구석에서 얼굴을 삐죽 내밀며, '좋은 아침입니다' 하고 인사말을 건넨다. 마치 전시에 용감한 병사들에게 보내는 인사말 같다.
다시 거리로 나온다. 당신은 잘 알고 있다. 돌아가는 길의 걸음걸이는 올 때와 다르리라는 것을. 보도에서 당신은 덜 자유롭다. 팔꿈치 아래에 바게트를 끼고 있고, 다른 손에 크루아상 봉지를 든 탓에 아까보다 좀더 부르주아가 되었으므로. 봉지에서 크루아상을 하나 꺼낸다. 크루아상은 따스하고 말랑말랑하다. 걸어가면서 추위 속에서 먹는 크루아상. 그 약간의 탐욕. 마치 겨울 아침이 당신 몸 속에서 크루아상이 되어 버리는 것 같다. 당신 자신이 빵 굽는 화덕과 집, 안식처가 된 것처럼 느낀다. 천천히 앞으로 걸어간다. 금빛 햇살에 온몸이 물든 채, 푸른색과 잿빛을, 그리고 이제는 사라진 장미빛을 통과한다. 하루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당신은 하루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이미 먹어 버린 것이다.
■필립 들레름
1950년 11월 27일, 오베르-쉬르-와즈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이 교사였던 까닭에 그는 유년 시절을 학교 안에 있는 놀이방에서 보냈다. 낭테르 대학에서 문학수업을 받은 후 노르망디 지방에서 문학교사로 임명된다. 1975년부터 지금까지 보몽-르-로제(위르)에서 아내인 마르틴과 살고 있다. 그의 아내 역시 문학교사로 재직하고 있으며,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 삽화가겸 작가이기도 하다.운동 코치를 지낸 일이 있는 그는 중학교 내의 연극부와 축구클럽을 이끌고 있다.
■ 내 얘기
장석주의 '책'에서소개받은 후 읽게 된 책, <첫 맥주 한 모금>.그의 문장보다는 그의 발상이 나를 자극했다. 옛날에 다정하게 느꼈던' 사물들과 순간들을 붙잡아두는 작업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생각을 하게 된 것이 '냄새'다. 내 생애에서 중요했던 순간들을 떠올릴 때면 항상 내 후각을 자극하는 그 무엇이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된 것이다. 내 인생의 냄새들을 문장으로 붙들어매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책. 아주 더디긴 하지만 나는 이미 그 작업을 시작했다. 설렌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건지,가끔 그런 의문이 드는때 나는 '냄새'를 떠올린다. 그리고 글로 옮긴다. 그러면 내가 확실하게 살아있다는게 믿어진다.
또 한 가지. 그가 교사라는 사실이 마음에 든다. 열정만 있다면 얼마든지 쓸 수 있는 직업이라는 사실을 그가 일깨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정록, 안도현, 곽재구, 김용택, 나희덕 그리고 최명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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